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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

  

신항섭(미술평론가)

   

바야흐로 전통적인 옻칠나전공예의 문예부흥기가 도래하는가? 지금 한국미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통적인 옻칠나전과 관련한 일련의 상황을 보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정부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늘었고, 이를 뒷받침하듯 전통미술 및 전통공예 인구도 불어나고 있으며, 전시회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가령 외국 국가수반이나 문화사절이 한국에 왔을 때 선물로 옻칠나전 제품이 선정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는 옻칠나전이 한국 전통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문화예술 장르임을 내외에 천명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으로는 일단 고무적이다. 아직은 일반대중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단계는 아닐지언정 이러한 고무적인 분위기로 말미암아 저변이 확산되고 있는 조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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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전칠기라는 이름으로 화려한 장롱이나 사방탁자 등의 생활기물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 있었다. 생활기물을 나전제품으로 채우는 것을 부의 상징처럼 여겼다. 그러나 전통 옻칠이 아닌 화학도료를 사용, 제품에 하자가 속출하기 시작하면서 10년 영화도 한순간에 끝나고 말았다. 이는 전통적인 순수한 옻칠재료 및 기법을 따르지 않고 상업적인 이윤추구에만 급급한 결과였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과 일련의 움직임이 어떤 모양새로 전개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옻칠나전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은 분명하다. 나전칠기에 대한 어두운 과거를 묻고 전통적인 옻칠나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회복하는 데는 한 세대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다행히 한 세대에 달하는 긴 시간동안에도 음지에서 오로지 신념과 자긍심만으로 전통적인 옻칠나전의 전승 및 발전 그리고 창작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소수의 장인들의 노력이 오늘의 상황을 견인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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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르의 전통미술이든지 대중화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전통 자체가 옛것을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삶에 녹아들기 쉽지 않다. 특히 전자문명이 만들어내고 있는 온갖 편리한 생활기물에 익숙해 있는 현실에서 아무리 옛것이 좋고 소중하다고 할지라도 선뜻 받아들이기란 어려운 실정이다. 편리한 삶에 익숙해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오직 신념과 자긍심 하나로 외길을 걸어온 옻칠나전 작가들은 시대적인 흐름에 오히려 초연한 입장이었다. 어쩌면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일관해 왔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작품 하나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치열한 장인으로서의 길로 매진할 수 있었으리라. 과학문명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신체적인 기능 및 기술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작품을 통해 인간 감정을 고양시키는데 예술의 참가치가 있다. 예술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인간이 신체를 사역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위의 가치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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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재현하는 작품을 통해 고려시대의 나전칠기 작품을 비추어보면 천 년 전의 혼과 기술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선다. 이들의 작품은 고려불화, 고려청자와 함께 당시 세계미술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빼어난 예술적인 가치를 구현한 전래의 옻칠나전 기물에 대한 헌사일 터이다. 유존하는 작품 숫자가 적어 그 존재가치가 선명히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고려시대의 옻칠나전은 고려불화, 고려청자와 같은 자리에 놓아야 마땅할 만큼 예술적인 성과가 뛰어나다는 점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되는 작품들 하나하나는 예술적인 미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고려시대 옻칠나전 장인들의 혼이 현현한 것이 아닐까싶을 만큼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고 아름답다. 한마디로 고려시대의 정신 및 기술이 천년이라는 시공간의 갭을 메우고 이 시대를 관통한다. 다시 말해 옻칠나전의 정통성을 지켜온 우리시대 장인들의 작품에서 고려시대의 영광이 재현되고 있음을 목도한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옻칠나전 작가들이 이룩한 성과는 고려시대에 성취한 그 절정의 기술에 육박하고 있다. 아니, 정교한 기술적인 완성도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고려시대를 능가할 정도이다. 우리 시대의 뛰어난 장인들의 작품이 새삼 고려시대 옻칠나전의 장인들을 호출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비록 소수의 장인들이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이룩한 성과일지언정 이제 고려시대 옻칠나전 작품 곁에 놓아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우리시대 옻칠나전 장인들 스스로의 노력이 일구어낸 그 결과물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잠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고려시대 이전, 한반도에 옻칠이 시작된 것은 기원전 4세기경의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석관묘에서 발견된 청동기 옻칠 파편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이어서 기원전 2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경남 창원시 동면 다호리 15호 고분에서는 옻칠을 한 고배형 방형칠두(高杯形 方形漆豆)를 비롯하여 통형칠기(筒形漆器), (), 청동검(靑銅劒) 집과 칼자루 등 20여 점이 발굴됨으로써 옻칠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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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로 미루어 오늘 우리시대에 만나는 옻칠나전 작품은 오랜 역사적인 전통 그 맥을 잇는 실체로서의 의미가 있는 셈이다. 이로써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자생하는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을 정제하여 도료로 만들어 쓰는 일련의 제작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옻칠 제품은 그 제작과정이 까다롭고 여러 가지 기술적인 제약으로 인해 대중화할 수는 없었다. 왕의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특수 신분 또는 제사용도로나 쓰일 정도로 귀히 여겼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급스러운 광택의 아름다움과 빼어난 방부효과로 인한 반영구적인 보존성은 귀한 기물에 쓰이는 최적의 요건이었다. 반면에 옻칠과 나전이 가지고 있는 고급스러움에 비례하듯 오랜 시간과 공력을 필요로 해 제작단가가 높아진다는 점은 대중화하기 어려운 요인의 하나이다. 하지만 반영구적이고 높은 예술적인 가치는 이러한 문제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옻칠나전과 옻칠화 그리고 옻칠회화에서 발현하는 예술적인 가치 그 아우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시회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통영옻칠미술관에서 기획한 <옻칠과 나전 작품>전은 전통미술로서의 옻칠과 나전이 얼마나 아름답고 높은 예술적인 가치를 성취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옻칠나전 전시회가 있었으나 우리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진정한 장인들만의 작품을 한 곳에 모은 예는 손에 꼽기 어렵다. 여기에 초대되는 9명의 작가 가운데 7명은 국가 및 지역을 대표하는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들이며 나머지 2명은 전통적인 칠화와 현대적인 옻칠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작고작가인 국가무형문화재 제10(나전칠기1) 김봉룡을 필두로, 원로인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10호 나전장 송방웅,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10호 나전장 이형만,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113호 칠장 정수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7호 옻칠(정제)장 박강용, 서울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1호 옻칠장 손대현, 서울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14호 나전장 정명채, 중요무형기능전승자문화재 나전칠기장 제10호 고 김태희선생 채화칠 최종관, 그리고 한국현대옻칠예술 선구자이자 옻칠회화 창시자인 김성수 등 9명의 작품이 함께 한다. 한마디로 한국옻칠나전의 현주소이자 실체의 집합인 것이다


이 가운데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들의 작품은 옻칠나전 기물이 주류를 이루는데, 좌경을 비롯하여 함, , , 항아리, 과기, 병 등 생활기물이 대종을 이룬다. 이들 옻칠나전은 전통적인 형태에 기반을 두고 문양이나 그림 등에서 개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문양이 정교하고 치밀하기 이를 데 없다. 완성도라는 점에서는 작품마다 그 극점으로까지 끌어올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마디로 각기 자기 분야에서 기술적으로나 작품의 완성도 그리고 미적 가치에서 최정상에 도달함으로써 옻칠나전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난다


옻칠 분야에서 역시 정점에 이른 작가의 작품에서는 순수한 옻칠 그 자체의 색태와 깊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깨워준다. 옻칠이나 주칠로만 이루어진 소품은 단색임에도 깊고 그윽하며 고급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어떤 도료로도 흉낼 수 없는 자연물에서 추출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색태를 실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옻칠화에서는 아름다운 문양의 배열이 만들어내는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맛보게 해준다. 이들 순수옻칠과 옻칠화로 이루어진 이층농, 대형반, , 발우, 원형볼 등의 생활기물은 심미표현의 깊이를 음미할 수 있다


현대적인 개념의 옻칠회화는 평면작업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조형미를 우선하는 순수미술의 영역에 속한다. 현대라는 시제에 합당한 조형감각, 즉 비구상적이고 추상적인 문양을 정치하게 배열함으로써 생활기물에 시문된 전통문양과 사뭇 다른 현대적인 조형미를 추구한다. 정형화된 전통문양이 가지고 있지 못한 자유로움과 더불어 평면에 펼쳐지는 조밀한 이미지 구성은 현대적인 회화로서 손색없다. 아니, 옻칠과 나전이라는 전통적인 재료는 기존의 평면작업과는 완연히 다른 새로운 개념의 현대적인 조형세계를 열어놓았다고 평가된다. 근래 한국화단에서 옻칠과 나전이라는 재료가 각광받고 있는 현실은 옻칠회화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이 <옻칠과 나전 작품>전은 전통공예 아니, 전통미술로서의 옻칠나전이 가지고 있는 미적가치 또는 예술성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처럼 옻칠나전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의 품격 높은 작품만을 모아놓고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옻칠전문미술관의 기획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전시회 형태인 것이다.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은 이런 형태의 전시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우리시대 최고의 장인인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최고의 작품들에서 옻칠나전이 발설하는 전통미의 실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러한 최상의 작품들은 그동안 전통적인 옻칠나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일거에 해소시킨다. 뿐더러 새삼 격조 높고 고상하며 우미한 예술품으로서의 진정한 미적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관장은 숙명여대에서 정년퇴임하기까지 옻칠강의에 전념해온 학구적인 원로작가이다. 전통적인 옻칠기법은 물론이요, 옻칠과 나전의 조합이야말로 진정한 한국적인 옻칠의 진수임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창작을 통해 이를 실천에 옮겼다. 옻칠과 나전 중심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시대감각을 가미함으로써 현재, 즉 현대라는 시제에 합당한 창의적인 작품이 나와야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옻칠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안하고 이를 보급하기 위해 공방을 만들어 제자를 양성하는 것도 옻칠의 예술적인 가치 향상을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선구자적인 노력은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동시에 아우르는 폭넓은 열린 시각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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